공동체의 중요성

나 자신을 보면 정말 실수 투성이고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을 자주 경험한다. 그나마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그러한 실수가 직간접으로 드러나고 교정되어지는 것이 다행이다.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서, 자녀들과의 관계 가운데 직접적인 충돌과 대화를 통해, 또는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 교정이 된다.

쎌은 혈연의 가족에게서 얻기 어려운 공동체성을 경험하게 한다. 혈연의 가족보다 더 객관적인 견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철이 철을 강하게 하는’ 경험은 쎌과 같은 믿음의 소그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지난 10여년간의 쎌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공동체의 유익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지도자’인 것 같다. 책임과 권한이 늘어날 수록 자그마한 실수와 치우침이 더큰 결과와 파장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지도자’에 있는 분들일 수록 이러한 소그룹에 속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세상에서 유명한 분들은 너무 유명해서 그런 것 같고… (연애인들을 생각해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 교회의 지도자들은 유명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주변에 교회의 담임목사님들, 부목사님들, 다수의 전도사님들도 쎌과 같은 소그룹에 몸을 담지 않는 (못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교역자들이 그렇게 깊이 한 소그룹에 몸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어본 적이 있다. 참… 어리석은 것 같다.

최근에 어느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원래 부목사님이 하시던 청년부 설교를 담임목사님의 설교로 하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청년부 담당 부목사님이 설교는 하되 담임목사님의 설교원고를 읽는 것으로 밀어 부치신 것 같다. 부목사님이 반대를 했겠지만, 담임 목사님의 의지를 꺽을 수 없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그렇게 하게 되었는데…. 얼마 안되서 (약간의) 물의를 빚고는 모든 것을 백지화 했다고 한다.

그 담임목사님의 깊은 의도에 이해가 된다. 교회가 한 영적 흐름을 타야한다는 원칙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교회의 지도자인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선포되는 한 흐름을 가져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되기 쉽다. 그 생각이 조금 더 발전하면, 부목사로 하여금 담임 목사님의 원고를 읽게 하는데까지 자연스럽게(?) 가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 교회 가운데 그렇게 하는 교회들이 이미 있어서, 좋은(?) 선례를 제시해주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의 흐름 가운데, 자신만이 교회의 영적 흐름을 인도할 수 있고, 또 자기는 틀리지 않는다는 영적 ‘교만’이 쉽게 녹아들어간다. 카톨릭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흔하게 보아온 종교인들의 교만의 형태이다.

만일 그 목사님에게 함께 울고 웃는 쎌과 같은 소그룹의 가족이 있었다면, 그 생각이 그 그룹 안에서 조정되지 않았을까? 교회 교역자들은 성도들에게 대개 귀한 ‘손님’이다. 좋은 면만을 보여주는 ‘손님’에게는 자기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굳이 관계를 해쳐가면서 ‘철이 철을 강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함께 살아야하는 ‘가족’에게는 그것이 가능하다. 그래서 가족이다. 교회 교역자들에게 그러한 ‘가족’이 없다면, 그분들의 실수와 치우침은 본인에게는 ‘교만’과 ‘아집’으로, 그의 지도하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삐뚤어진 신앙과 고통을 안겨다 주게 된다. (‘귀한 손님’으로 교회의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겠지만, 사실은 가족없는 외톨박이가 교역자라고 말한다면 너무 심한 말일까?)

인간적으로는 ‘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면 하는 속물적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를 손님이라기 보다는 가족으로 맞아주는 여러 공동체에 속한 것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교만’이라는 단어는 내게 너무나 가까이 있다. 그 공동체(들)이 없이는 매일 좌나 우로 치우치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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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공동체의 중요성

  1. Joon S. says:

    귀한 손님으로 대접해 주기 보다는 가족으로 대하라는 말에 크게 동감합니다. 교회에서 오히려 가장 잘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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