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의 예의

코스타는 여러 사람과 단체, 그리고 교회가 힘을 합해서 학생, 청년들을 섬기는 사역이다. 미국 코스타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어느 한 지역교회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오직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은 뒤로 숨는 헌신이 있었다. 그러한 헌신의 바탕위에 코스타는 여러 교회, 단체,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동역할 수 있는 한국 교회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운동으로 자리를 맥여왔다. 적어도 미국 코스타는 그렇다.

코스타가 지향하는 비전에 공감하는 분들은 시간으로 물질로 그리고 자신의 교회 학생, 청년을 코스타에 보냄으로 그 사역에 동참을 했었다. 강사님들은 사례비를 기대하기는 커녕 교통비까지 모두 본인의 부담으로 오셨다. 오셔서는 학생들을 위해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퍼붓고 가셨다. 지역교회에서는 등록비 또는 교통비를 지원해주면서 학생, 청년들을 코스타에 보냈다. 이렇게 드러나는 동역 외에도, 소리없이 섬기심으로 동역하셨던 분들도 많이 계신다. 특히 코스타 초창기에는 학생들을 위해 김치를 담고, 밥을 지어주며 이름도 없이 소리도 없이 동역하셨던 분들이 많이 계셨다. 3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중 어떤 분들은 코스타 사역의 안부를 물어보신다. “아니 이분이 어떻게 코스타를 아시지?” 할 정도로 드러나지 않으시고 섬기셨던 분들이다. 감동이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러한 아름다운 동역이 점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섬기는 분들 중에도 일주일의 시간을 헌신하러 오시기는 하지만 자신이 섬기는 공동체에서 학생, 청년들을 보내는데는 인색하신 분들이 계신 것 같다. 더 나아가, 함께 섬기는 동역자 분들의 교회에서 코스타가 열리는 시기에 학생/청년부 수양회를 열기도 한다. 그 교회에는 코스타 갈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한다라도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나마 코스타에 가려고 했던 사람들까지도 확실하게 못가게 하는 것은 틀림이 없지 않은가? 이것은 동역의 예의가 아니다.

개교회의 폐쇄성을 지양하고 그릇을 오픈해서 많은 동역자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코스타가, 이제는 다른 성격의 개교회의 폐쇄성으로 인해 동역자들 안에서도 어려움을 겪게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 자신의 교회에서 모든 것을 다 해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교만이 한국에서의 ‘대형교회’라는 문제점을 낳았다고들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조금은 양보하고 절제함으로 큰 하나님 나라를 세우려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한 안목이 없이 진정한 동역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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