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치는 아들

자녀들에게서 자신에게 없는 재능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얌체 부모는 “내가 어린시절에 좋은 환경에 있었으면 나도 이렇게 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정직한 부모는  아빠의 가계와 엄마의 가계를 좇아가면서, 혹 그런 재능이 있었는가 찾아보기도 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덤으로 큰 것을 얻었다고 좋아한다.

재능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들은 과정보다는 결과를 보기 마련이다.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을 흘려서 이룬 결과인지 알지 못하면서, 결과만 보고는 재능이 있다, 없다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실수를 하기 쉽다.

아들 녀석은 피아노를 좋아한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데 곧 잘 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굳이 근거를 찾자면 엄마가 한국의 여학생들이면 다 배우는 정도로 피아노를 쳤다는 것 (하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ㅌㅌ), 아빠가 피아노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 조금 의외다. ㅋㅋ 물론 “곧잘 친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이다. 미스 터치며 부족한 부분이 잘하는 부분보다 더 많다. 하지만, 아빠가 보기에 너무 대견하고 사랑스럽다. 덤으로 얻은 것 같아 더욱 좋다. (공짜 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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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녀석은 본인이 피아노 곡을 찾아서 듣고, 또 그것들 가운데 좋아하고 또 칠만한 것들을 골라서 친다. 우리가 라디오에서 듣는 그런 곡들을 비스무리하게 친다. ㅋㅋ “비스무리”가 중요하다.  한국에서는 쇼팽을 치려면 체르니 몇번까지 쳐야하는 등 해야할 과정이 무척 터프하다. 아들 녀석은 그런 기본은 하지 않고 쇼팽부터 치는 그런 녀석이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 갑자기 아들이 쇼팽의 즉흥 환상곡, 스케르죠 등을 쳐대니, 신기하고 또 기특했다. 나와 아내는 아들이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레슨도 권유해 보았지만, ‘자기는 좋아하는 곡을 자유롭게 치고 싶다’며 레슨받는 것은 싫다고 했다.

아들은 왠만해서 우리들 앞에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안 보여준다. 대학을 간 후는 조금 달라져서, 방학 중에 집에 와서 있는 기간에는, 연습하는 모습을 여러번 보여주었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처음으로 연습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새로이 연습하는 곡이라 하더라도, 솔직히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너무 못치는 것이었다. (쏘리~~ 아들.) 새로운 곡이라고 하더라도 악보를 보면서 어느 정도는 칠 줄 알았는데, 중간 중간에 이음 저음 눌러보면서 정확한 음을 찾아가는 것이었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저렇게 해서 그 곡을 친다는 것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웬만한 사람이면 저렇게 하다가는 중간에 포기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바이엘 정도 치는 사람이 쇼팽을 바로 연습하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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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에 아들이 하던 말이 기억났다. “하루에 2시간 이상씩 연습해요.” 오후 4시쯤 학교에서 와서 엄마 아빠 아직 일에서 안 돌아온 시간에 아들은 그렇게 마구 피아노를 두드리며 연습을 했었던 것이다… 그 때는 별 생각없이 흘려 들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정말 티끌보아 태산을 이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얼마나 피아노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우리들 앞에서 보여주었던 연주가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노력해서 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재능이 있다기보다는 정말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한 결과였다. 그것도 모르고, 아빠는 아들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아들이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리고 재능이 있어서 조금 연습하고 남는 시간 노는줄로만 알았는데… 참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지난 겨울방학 때 집에서 틈틈이 게임을 하는 아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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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Responses to 피아노치는 아들

  1. 더가까이 says:

    독학으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물려받은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은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제대로 배우면 훨씬 빨리 늘지 않을까요? (체르니 같은 것 강요하지 않는 눈높이 선생님 만나서).

    고등학교 동창 생각이 나네요. 희진이던가? 용구처럼 독학으로 피아노 쇼팽, 베토벤 다 치고 연대 작곡과 갔었던 것 같은데…

    • psalm1logos says:

      동감 동감. 그런 훌륭한 동창이 있었군요. 그나저나 이제는 제 품을 떠난 자식이라… 혹시 그곳에 좋은 선생님 있으면 소개시켜 주세요.

  2. 더가까이 says:

    용구 같은 사람 또 하나 있네요 🙂 http://news.joins.com/article/19571568?cloc=joongang|home|newslist3

    • psalm1logos says:

      용구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이지요. ^^
      대단한 사람이네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진정한 창의력은 ‘좋아함’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 더가까이 says:

        ‘그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뿐 같은 과로 보이는데요 ㅎㅎ

      • psalm1logos says:

        어쨋든지, 아이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요. 우리 때는 그런 것을 누리지 못했다고 보는데요, 우리 아이들 때는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을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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