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경험

올림픽을 비롯해서 최정상에 가 본 사람들은 그 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경지를 경험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의 경험은 그 뒤를 따르는 후배들로 하여금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경지로 인도하는 귀한 선생님이 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먼저 그곳을 가본 선배가 있기에, 그 선배를 신뢰하고 그곳까지 갈 수 있으면 축복받은 후배입니다. 그 선배를 넘어서 그 지경을 넘어서서 확장시키는 후배는 정말 뛰어난 후배입니다. 먼저 그 지경을 가본 선배가 있기에 가능합니다.

영적인 경험은 육체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영적 세계/실체의 경험입니다. 그런 만큼 영적인 경지로 후배를 인도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합니다. 신앙 생활은 보거나 만지거나 증명할 수 없는 영적 세계와 실체를 믿고 더 나아가 경험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는 신앙의 고수는 영적 세계를 보지 못하는 후배들로 하여금 조금이나마 볼 수 있고 경험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또는 지금은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해도, 저 사람과 같이 있다보면 볼 수도 있고 만질수도 있을 것 같은 믿음을 주는 사람입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모범 답안’과 ‘정답’을 줄줄이 말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면서 성경의 구절을 보여주면서 ‘정답’을 주는 것이지요. 짖궂은 저는 그런 답을 하시는 분께서 정말 그 의미를 아는 지 한번 여쭈어 봅니다. 정말 그 ‘정답’을 이해하시는 지 물어보는 것이지요. 그럼 대개 답을 못 하십니다. 가령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됩니다”라고 말하시면, 저는 “말씀하신 문맥에서 은혜는 뭔가요”라고 물어봅니다. 그럼 대개 답을 못합니다. ‘은혜’, ‘믿음’, ‘영광’ 등 믿는 사람들은 그 단어를 듣기만 해도 가슴에 뜨거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잘 모른다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로, 성경공부는 신학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경 말씀을 통해 경험한 영적인 영역을 소개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건전한 신학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학 지식’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위에 말씀드린 ‘모범 답안’과 ‘정답’은 ‘신학 지식’이라는 면에서 정답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학적 정답과 지식은 신앙인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없음을 너무 자주 봅니다. 예를 들자면 ‘은혜’를 설명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신학적 의미를 알려주고 사전적인 의미를 알려주는 것은 많은 경우 지식을 추가하는데 그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경험한 삶을 통해서 자신이 이해하고 알고 있는 ‘은혜’를 나누어주는 것은,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 ‘은혜’ 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또 그 ‘은혜’에 관심을 갖게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성경 공부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기독교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는 불신자들은 많은 경우 신학 지식을 얻으려고 오지 않습니다. 자신이 보지 못하는 영적 세계를 보여달라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질문을 할 때는, 그들이 보고 이해할 수 있는 답을 달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분이 ‘고수’인지 아닌지는 믿는 분들보다 믿지 않는 분들이 더 잘 알아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신들에게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이 ‘고수’ 아니겠어요?

이미 믿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영적 경험을 한 단계 넓혀주는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믿음’, ‘생명’ 이라는 단어들은 믿음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영적 경험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새로운 차원의 영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 깊은 지경까지 자신이 가려고 하고 또 후배를 이끌어주는 장이 바로 성경공부입니다.

최근 ‘지구촌 말씀잔치’에 오신 목사님들께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시는 것을 보면서 그런 원리를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복음’의 영적 경험을 눈물이 핑 돌며 울먹이시는 것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신학적 정답을 다 알고 있지만, 자신은 그 깊이를 모른다는 겸손함으로 표현해 주셨습니다. 적어도 그 세계를 아는 분입니다.한편, 어떤 목사님은 너무나 평범한 한 문장 안에서 사도 바울이 경험한 ‘교회 공동체’의 영적 비밀을 끌어내셨습니다. 눈이 확 열리더군요. (제가 몇 번 공부했던 구절이라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참 오랜만에 만나본 ‘고수’였습니다. 또 다른 분은 ‘은혜’를 강조하시면 결론을 내셨지만, 그 은혜가 무엇인지는 성경 텍스트에 나온 범위를 넘어서지 못하셨습니다. ‘생명’에 대한 질문이 나왔지만, 목사님을 포함해서 다들 ‘신학적 정답’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다들 성경 지식을 가지고 가르치려고 하더군요. 조금 더 나가면 “너는 예수님을 믿어야 해”라고 말할 분위기였습니다. ㅋㅋ 하지만, 질문을 하신 분은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성경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생명’의 영적 경험/실체의 더 깊은 세계를 듣고 경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왔습니다. (저는 질문하신 분이 오히려 ‘고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

영적인 경험을 ‘초자연적인 경험’이라고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저는 조금 달리 생각합니다. ‘초자연적인 경험’도 사실은 우리의 오감으로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한계 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인 ‘죄의 용서’와 ‘사랑’은 영적인 실체입니다. 영적 실체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오감을 넘어섭니다. 예수를 믿게 되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영적 경험입니다. 제가 믿는 신앙생활은 이러한 영적인 경험이 ‘하나님 그 분’,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경험하는 것으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영적 경험’을 위해 성경공부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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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esponses to 영적인 경험

  1. woodykos says:

    우아…. 이 글은, 한번에 읽기엔 벅찹니다!
    며칠에 나누어서, 하루에 반 단락씩 읽으며 곱씹어야 할 듯합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Pingback: 청빙후보들의 강점과 약점 (1/2) | ㄱㄷ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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