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설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제 아이들을 모아놓고 집에서 훈계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참 훈계를 하는데 아들 녀석이 설교하지 마시라고 얘기를 하더군요. ㅌㅌ ‘영어’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매우 참신했습니다. (아 한국이나 미국이나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면 ‘설교’가 되는구나~.)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꼰대’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훈계를 마쳤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ㅋㅋ

일년에 몇번 소그룹에서의 양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설교’ 스타일의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습니다. 소그룹의 양방향 소통에서는 상대의 질문을 유도하고 그 질문에 따른 맞춤형 전달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설교는 일방적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일관성있게 전해야 합니다. 소그룹에서는 “그 부분이 잘 이해가 안되요”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고 그것을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설교는 그런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 설교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도록 사전에 최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성경공부를 준비할 때는 제 생각의 조각들을 이리저리 끄적거린 노트를 준비하고, 설교를 준비할 때는 서론, 본론, 결론을 포함한 하나의 스토리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DMC (Diaspora Mission Church)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분들만이 ‘설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세상에서, 목사 안수는 커녕 신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용감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전통을 세우고 지켜나가시는 그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DMC 에서 전한 말씀을 아래에 남깁니다. 제 부족한 묵상의 기록입니다. 먼 훗날 이 블로그를 보면서 빙그레 웃음을 지을 제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짜식 그 때 이 정도였구나… 하면서)


불의한 청지기 (눅 16:1-13)

<도입>
법을 잘 지키고 살면 손해보는 것 같은 세상. 잔머리 굴려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것 같아 보이는 이 세상. 아침 출근 길에 보면 길에서 다들 서 있는데, 우회전 전용 도로 끝까지 가서는 쏙 끼어드는 사람들, 심지어는 고속도로에서 노견으로 운전해서는 앞으로 가서 끼어드는 사람들.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 얄밉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오늘 본문을 보면 잔머리 굴리는 청지기가 한 명 소개됩니다. 그 당시에도 이런 잔머리의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본문 관찰>
본문에 보면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축내는 그리 좋지 않은 청지기였던 것 같습니다.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는 그를 해고하겠다고 통보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잔머리를 굴려서 주인에게 빚을 진 사람들의 빚을 자기 마음대로 줄여주는 선심을 씁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가 해고 된 후에 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는 일종의 보험을 든 것 같습니다.

남의 돈으로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잔머리 굴리는 나쁜 사람이지요. ^^

그런데, 본문에서는 주인이 그 잔머리 청지기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헐~ 하게되는 대목이지요. 자기 재산을 축냈고 사기를 쳤는데, 그런 잔머리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도 한 술 더 뜨시는 것 같아요. 8, 9절에 보면 “이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문제 제기>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 잔머리 청지기처럼 ‘잔머리’를 굴리라고 하시는 것인가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는 말씀은 잔머리를 굴려서 돈을 벌되, 그 돈을 좋은 곳에 사용하라는 말씀이신가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혼란을 해결하려고 여러 시도들이 있어왔습니다. 제가 들어본 해석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그 주인이 원래 나쁜사람이었데요. 오늘날로 말하면 사채업자라고나 할까요? 사람들에게 높은 이자를 부과해서 착취를 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청지기가 한 일이, 나쁜 주인이 뺏은 재물을 원래 주인들에게 나누어준 착한 행동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인은 마지못해 칭찬을 했고, 또 예수님도 칭찬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해석을 매우 ‘창조적인’ creative한 해석이라고 표현합니다. 달리 말하면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 자기 마음대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지요. 상상을 하면 무슨 이야기든 무슨 소설이든 못 쓰겠어요? ^^ 이런 해석을 들으시면 그냥 웃으세요. ^^

<문제 해결>
자 그럼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비유 또는 스토리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열쇄는 예수님의 해석 또는 결론입니다.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이해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수님의 해석 결론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10절이 그것입니다. 제가 읽어 보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불의하다.”

본문의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에게 맡겨진 주인의 재산에 충실하지 않았고 불의했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것을 마치 자기 것인 마냥 낭비하고 또 선심까지 썼지요. 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불의’입니다. 예수님은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영어 성경에 보면 청지기가 shrewd 했기 때문에 주인이 칭찬했다고 나옵니다. Shrewd는 지혜롭다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약싹 빠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을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주인이 자기 재산을 축내는 청지기를 짜르려고 했는데, 오히려 허를 찔린 것입니다. 이렇게 된 상황에서 주인은 “야, 저 녀석 되게 약싹빠르네… 내가 졌다”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 참 약싹 빠르다”라고 “너 잘났다..”라고요. ^^

예수님께서도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에서, 재물을 투자해서 영원한 처소의 보험을 들어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이 땅에서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훗날을 위해서 자신 또는 심지어는 남의 재물까지 (도둑질하여) 사용한다. 하물며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는 너희들은 얼마나 더 잘 해야겠니?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영원한 처소를 이 땅에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십니다.

<본론>
자 이제 본문의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본론은 이것입니다.
11. 너희가 불의한 재물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 또 너희가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였으면, 누가 너희에게 너희의 몫인들 내주겠느냐?

성경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잠시 있다가 가는 나그네의 삶 청지기의 삶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 그것은 시간, 재물, 재능 등인데요, 그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맡겨진 것들에 우리가 충실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것 영원한 것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충실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실 참된 것 영원한 것을 얻게되는 열쇄가 된다는 것이지요.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에게 맡겨진 것에 충실하지 않았고, 더 나가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약싹빠르게 잔머리를 굴려 불의를 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당장은 이 땅에서 지혜롭게 보이고 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우리에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한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것들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의 가정 (부모님, 자녀), 친구, 여러분의 외모, 재능, 재물, 그리고 시간.. 이 모든 것의 주인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고, 다 잠시 이 땅에서 관리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신 것들을 사랑하고 감사하고 욕심내지 않으며 잔머리 굴리지 않으며 그것들을 잘 관리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첫째로는, 여러분의 가정, 부모님, 친구, 외모, 재능, 재물 등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어진 것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욕심, 잔머리를 굴려서 이 세상에서의 이익을 취하려는 유혹을 버리고, 충실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의 가족, 친구, 외모, 재능을 사랑하고 가꾸는 것입니다. 주신 재능, 재물에 만족하며 그것을 나만을 위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청지기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충실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대로 살아가는 것은 참 힘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 세상의 화려함과 크기에 압도되고 그것을 추구하려는 삶에 자연스럽게 끌려갑니다. 하지만,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개인으로 혼자 놔두지 않으시고 공동체,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혼자 있어 내가 너무 초라해 보일 때, 가족의 격려와 사랑이 우리를 세웁니다. 혼자 있어 내가 세상을 좇는 것에 눈이 멀어 있을 때, 가족의 충고와 눈물의 기도가 우리로 하여금 눈을 뜨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저는 DMC 교회가 시작부터 이런 탄탄한 공동체를 바라보고 형성된 교회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서로 더욱 사랑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상급을 바라보고 오늘을 견디시는 여러분 되시기 축원합니다.

대개 목사님들께서는 이 정도에서 “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설교를 맺으시지요? 근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아직 13절을 안 했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그가 한 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떠받들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예수님의 비유의 진짜 결론은 13절입니다. 짧게 말씀드리면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것이지요. 세상은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사람들을 지혜로운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지 재물을 모으면 성공한 삶입니다. 그것은 재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명예,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세상이 보기에 미련해보이기까지 한 의로운 길을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내게 주신 작은 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충실하는 삶, 내게 주신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 땅에서 내 주변을 섬기는 그런 삶이 영원한 처소를 준비하는 삶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것을 사랑하시고 감사하시며 그것에 충실하도록 노력하세요. 그리고 그것으로 여러분의 교회, 그리고 이웃을 섬기도록 노력하세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입니다. 가족공동체로 이루어진 DMC 교회는 이런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기본적인 토대가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며, 또한 세상에 한눈 팔지 않게 붙잡아주는 탄탄한 공동체 안에서,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DMC 교회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들을 감사하는 기도
  2. 잔머리를 굴리며 세상의 유익을 극대화 하려는 내 안에서의 유혹을 대적하는 기도
  3. 하나님을 섬기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공동체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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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설교

  1. 더가까이 says:

    어려운 본문을 택하셨네요 🙂

    몸담고 계신 침례교단에서는 안수집사(장로교에서 장로격)들에게 공예배 설교를 허락하며, 신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일정자격을 갖추었다고 회중이 인정하는 사람들을 지역교회 목사/전도사로 세운다고 알고 있습니다. 10대 소년 나이에 설교자로 세우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나 로렌 커닝행 목사님처럼…

    • psalm1logos says:

      원래 교수들은 잘 안하지만, (뭘 잘 모르는) 대학원생들이 오픈 프로블럼에 도전하잖아요? ㅋㅋ
      네, 맞아요. 침례교단에서 (원칙적으로)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한인 침례교회는 대부분 장로교회와 별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경우도 드문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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