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학습 (1)

20-30대 시절에는 조금 몸이 안 좋으면 ‘조금 쉬면 낫겠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했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명언에 동의하지만, 건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젊은 시절에는 그 말이 그리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몸이 옛날 같지 않은’ 시절이 오니, 그 말의 의미가 점점 더 깊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조금 쉬면 낫겠지’의 조금이 점점 길어지고, 몸이 찌뿌둥하고 무거운 것이 일상이 되어가다 보면, 마음도 정신도 함께 무거워지고 어두워지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이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점점 알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어머니께서 최근 몇년 사이 신체의 여러 부분이 약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계십니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맨 눈으로 일간 신문을 보셨는데, 이제는 돋보기를 사용해도 글자가 잘 안보이는 황반 변성으로 고생을 하고 계십니다. 허리, 무릎, 어깨 등 여러 신체의 부위들이 이전에는 ‘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힘이 들고 통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러한 변화들 가운데 무척 힘들어 하시는 것을 옆에서 보고만 있습니다. 할 수 있었던 ‘당연한’ 일상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충격적으로 어머니께 다가오는 것을 봅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돌아가신 상황에서 혼자서 지금까지 꿋꿋하게 살아 오셨는데, 이제는 어머님 당신의 몸 조차도 믿고 의지할 수 없다는 사실에 큰 두려움을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몸이 힘들다는 것을 넘어 살 희망과 의미가 없다는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때마침 저도 오른 팔에 테니스 엘보우가 걸렸습니다. 한달 정도 오른 팔을 잘 못 쓰고 있는데요, 오른 팔에 힘을 줄 수 없고, 힘이 주어지지 않으니, 큰 무력감을 느낍니다. 그나마 테니스 엘보우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료가 되는 것인데요, 그 시간이 옛날에 비해 무척 길어지는 것에 마음이 초조해 집니다. 사실 테니스 엘보는 저희 어머니께서 겪고 계시는 것에 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오른 팔의 작은 아픔이 제 작은 경험의 창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하는 공감의 확대경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무의식 가운데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을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느끼게 되는 불안과 절망감을 어머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멀리서 어떻게 해 드릴 수 없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또 한편으로는 저도 결국은 겪고 지나가야 할 과정일텐데, 그런 상황에서 나는 과연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러한 과정에서도 ‘희망’과 ‘의미’를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활기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인류 공통 과제에 대한 선행학습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나누며 어머니의 말씀을 들어드리고 함께 공감하려 하는 것이 제가 현재 하고 있는 선행학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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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esponses to 선행 학습 (1)

  1. 더가까이 says:

    그러게요… 저도 몸이 여기저기 고장나기 시작하는것 같아요 ㅎㅎ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가 와닿는 나이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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